어렸을 때 성적 학대를 받으면 뇌 크기가 작아지고, 뇌 신경 회로가 손상된다는 국내 연구결과가 나왔다.
특히 이 같은 사건은 ‘주요우울장애’에 영향을 줘서 우울증을 더 심하게 겪고, 만성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규만 교수와 고대 의대 본과 4학년 학생(김수영‧안성준‧한종희)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주요우울장애’ 환자의 뇌 자기공명영상(MRI) 데이터와 아동기 학대 경험에 대한 심리설문 데이터를 통해 아동기 학대 경험이 뇌 구조 변화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정신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Psychiatry Research’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아동기의 신체적‧정서적 학대와 방임 같은 외상 경험은 △우울증 △불안장애 △성격장애 같은 다양한 정신질환 발병에 영향을 미치고, 질환의 치료와 경과에도 영향을 준다.
실제로 상당수의 우울증 환자는 아동기 학대를 경험한다. 특히 약물‧심리 치료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아서 만성적인 경과를 보이며, 자살 위험성도 높아질 수 있다.
때문에 아동기 학대 경험이 뇌에 어떤 변화를 일으켜서 우울증 발생과 경과에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고대 의대 연구팀은 19~64세 성인 중 주요우울장애 환자 75명과 정상 대조군 참여자 97명을 대상으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약 2년간 △뇌 MRI 영상 △임상 관련 정보 △아동기 외상 질문지(Childhood Trauma Questionnaire)를 통해 학대 경험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했다.
아동기 학대 경험을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로 분류하고, 주요우울장애 진단 및 아동기 학대 경험에 따라 뇌의 특정 영역에서 일어나는 대뇌피질의 부피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경험한 경우 대뇌피질 부피에 유의한 결과를 보이지 않았지만 아동기 성적 학대를 경험한 참여자들은 그렇지 않은 참여자에 비해 우측 대뇌 반구 중간후두피질이 약 10% 위축된 것으로 확인됐다.
후두피질은 시각 정보처리를 담당하는 대뇌 영역이다. 특히 성적 학대의 심각도가 클수록 우측 대뇌 반구 중간후두피질의 위축은 더 심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주요우울장애 환자들의 경우 정상 대조군 참여자와 비교해서 정서 조절을 담당하는 대뇌 영역인 우측 전대상피질 부피도 약 3.3%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우울장애 환자들 중에도 아동기 성적 학대를 경험한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우측 중간후두피질이 약 10% 위축돼 있었다.
이는 우측 중간후두피질의 부피 감소가 아동기 학대에 따른 뇌 손상을 평가하는 바이오마커로 활용될 수 있고, 아동기 학대로 뇌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난 우울증 환자들을 구분해서 이들의 우울증 경과와 치료 반응 예측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규만 교수는 “아동기 학대를 경험한 우울증 환자들이 더욱 심한 우울증상과 만성적인 경과를 밟는 이유는 아동기 외상 경험으로 뇌 신경회로가 손상됐기 때문”이라며 “아동기 학대에 따른 뇌의 구조적 변화가 발생한 우울증 환자들을 선별하고, 뇌 과학에 기반한 맞춤형 심리사회적 치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