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방패’. 우리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과 이 병에 맞서 싸우는 ‘신체 면역’을 이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평소 건강관리를 아주 잘 해서 면역력이 높으면 모든 질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요?
세균‧바이러스에 따른 감염 질환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증상이 심각하면 사망에도 이릅니다. 때문에 감염 질환 노출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예방 접종’을 합니다.
과거에는 대부분 예방 접종이 면역력이 완성되지 못한 신생아부터 영‧유아기에 집중됐습니다. 그럼 성인기에는 예방 접종이 필요 없을까요?
인구 고령화로 △만성 질환 △암 △이식 환자 등이 급증해서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이 많고, 새로운 질환 창궐 및 예전에 없던 백신의 개발로 성인기에도 많은 예방 접종이 권고됩니다. 연령, 만성 질환 등에 따라서 필요한 예방 접종을 챙기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질환을 막거나, 후유증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환(VPD‧vaccine preventable disease)’이지만 예방 접종을 하지 않아서 사망하는 사람은 영‧유아보다 성인에게 훨씬 많아진 것으로 보고됩니다. 성인에게도 필요한 주요 예방 접종 종류와 특징, 접종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면역력 점차 줄고, 새 감염병 유행
영‧유아뿐만 아니라 성인도 건강을 위해 생애주기별로 ‘예방 접종’을 챙겨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박윤선 교수는 "우선 어렸을 때 필요한 백신을 일정에 따라 모두 접종했어도 시간이 지나면, 면역이 감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10년마다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Td/Tdap)’ 백신의 재접종을 권고하는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는 국가 차원의 영‧유아 예방 접종을 지원하지만, 이 시기에 챙겼어야 할 예방 접종을 놓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총 2회 접종이 필요한 ‘홍역‧볼거리‧풍진(MMR)’ 백신을 아예 접종하지 않거나, 1회만 접종한 사람이 많습니다. 생후 12~15개월에 진행하는 1차 접종은 잘 챙겼지만, 4~6세 때 필요한 2차 접종을 잊은 것입니다.
또 감염병의 유행에 따라 새로운 예방 접종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최근 국내에선 젊은 세대에게 ‘A형 간염’이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과거에는 대부분 어린 시절에 A형 간염 면역을 획득해, 성인이 된 후 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점차 어렸을 때 A형 간염에 노출되지 않은 성인이 많아져서 면역이 없는 고위험군은 예방접종을 권고합니다.
▶‘새로운 백신’ 개발되며 접종 기회도 늘어
성인기에 예방접종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또 다른 이유는 △코로나19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처럼 과거에는 없던 새로 백신이 개발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해외여행, 직업적으로 특정 백신이 필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수막알균감염증‧황열 등 다양한 풍토병이 있는 지역으로 여행‧출장을 가면 백신 접종이 권고됩니다.
국내에만 머물러도 △의료인 △군인 △미생물실험실 종사자 △보육시설 종사자 △돼지 사육 종사자처럼 특정 감염병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집단은 선택적으로 예방 접종이 필요합니다.
특히 인구 고령화에 따라 예방 접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약 2년 뒤 인구의 20%가 65세 이상 노인인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고, 이에 따른 만성 질환자와 면역력 저하자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박윤선 교수는 "고령자는 면역력 감소로 감염병에 잘 걸리고, 중증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당뇨병‧신부전 같은 만성 질환자의 수명이 늘고, 암 환자 증가에 따른 항암제‧면역억제제 투여자가 증가하면서 감염병에 취약한 성인이 폭발적으로 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인에게 필요한 주요 ‘예방 접종’
성인기에 챙겨야할 예방 접종도 영‧유기에 못지 않게 많습니다. 우선 해마다 독감 유행 시기에 맞춰서 ‘인플루엔자 백신’을 접종해야 합니다. 이때 ‘코로나19 백신’도 함께 챙기는 것이 권고됩니다.
이와 함께 연령, 만성 질환, 과거 예방 접종 시기를 고려해서 △폐렴구균 백신 △대상포진 백신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Tdap) 백신 등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개인의 면역 상태와 상황에 따라서 △A형 간염 △B형 간염 △수두 △홍역‧볼거리‧풍진(MMR)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등을 접종할 수 있습니다. 또 여행 지역, 직업 등에 따라 권고하는 백신이 더 늘어납니다.
‘폐렴구군 백신’은 폐렴에 따른 사망률이 높은 노년층에 권장합니다. 만성 질환이 없는 건강한 65세 이상 고령자는 1년 이상 간격으로 2회 접종합니다. 15가 단백결합 백신(PCV15)을 먼저 접종하고, 1년 뒤 23가 다당류 백신(PPSV23)을 접종하면 됩니다.
신체의 감각 신경절에 잠복한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재활성화하면 찾아오는 대상포진을 예방하기 위해 50세 이상 성인은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RZV)’을 2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합니다.
상처를 통해 파상풍균이 번식하면서 만든 신경 독에 따른 감염 질환인 파상풍을 예방하는 ‘파상풍 백신’은 연령과 무관하게 10년마다 접종이 권고됩니다.
박윤선 교수는 "호흡기 질환인 백일해를 막는 ‘백일해 백신’은 가족 내 신생아와 영‧유아가 있으면 필요하다"며 "파상풍과 백일해는 혼합백신(Tdap)으로 한 번에 접종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만성질환‧암‧이식 환자의 ‘주의사항’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서 감염 질환에 취약한 △만성 질환 △암 △이식 환자들의 예방 접종이 특히 중요하지만, 주의할 점도 잘 챙겨야 합니다.
우선 △당뇨병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간 질환 △신장 질환 △심혈관 질환 등 만성 질환이 있으면 연령과 무관하게 폐렴구균 백신 2회 접종과 매년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이 권고됩니다
또 만성 신장 질환자는 B형 간염 항체검사 결과가 음성이면 B형 간염 백신을 추가합니다. 혈액투석 중인 환자는 매년 항체 검사를 진행해서 재접종 여부를 결정합니다. 만성 간질환 환자는 A형 간염 예방 접종 병행을 권고합니다.
항암 치료를 받는 고형암 환자는 만성 질환자와 동일하게 예방 접종을 권장하지만, 항암 치료가 한창 진행 중인 시기는 피해서 접종합니다. 특히 MMR과 수두 백신 등 생백신 접종은 금기입니다.
고형 장기이식 환자는 △인플루엔자 △폐렴구균 △파상풍 △B형 간염 △A형 간염 백신 접종을 권고합니다. 생백신인 MMR과 수두 백신은 최소한 이식 4주 전에 접종하며, 이식 후에는 접종하면 안 됩니다.
단, 골수이식은 2년 후 MMR, 결핵(BCG), 경구용 소아마비(OPV) 등 생백신 접종이 가능합니다.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고 있는 자가면역질환자는 반드시 진단 초기에 백신 접종 이력을 확인하고, 가능하면 면역억제제 투여 2~4주 전에 필요한 예방 접종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박윤선 교수는 "이런 이유는 아바타셉트(Abatacept), 리툭시맙(Rituximab) 같은 면역억제제의 경우 투여 후 백신을 접종하면 백신 효과가 떨어지거나 항체 생성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려면 △인플루엔자 △폐렴구균 백신 접종을 권고합니다. 이외에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 백신 △인유두종바이러스 백신 △B형 간염 백신 △A형 간염 백신 등 불활화 백신의 접종이 가능하지만, ‘생백신 접종’은 안 됩니다.
면역억제제의 종류와 용량에 따라 백신의 효과가 낮아질 수 있어서 반드시 접종 전에 의료진과 상의해서 접종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