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 전기차를 쉽게 볼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국토교통부의 자동차 등록현황 보고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2024년 7월 기준 62만1071대의 전기차가 누적 등록됐습니다. 보급률은 인구의 대부분이 몰린 서울과 경기가 각각 12.8%, 21.7%에 달합니다.
이처럼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전기차 화재 사고’입니다. 전기차 배터리에 불이 붙어서 화재가 발생하면 내연기관차보다 진화가 많이 어려워서 마치 산불 피해처럼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가 연소하면서 내뿜는 다양한 유독 물질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부, 안과 질환 등을 겪을 수 있어서 각별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기술 발달이 때로는 새로운 환경보건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입니다. 전기차 화재 사고에 따른 건강 문제와 대책이 시급한 환경보건 정책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건강 피해도 심각한 ‘전기차’ 화재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기차 1만 대당 화재 건수는 1.32건입니다. 특히 전기차 화재는 진화가 힘들어서 직‧간접적인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전기차는 화재가 발생하면 배터리 온도가 1000℃ 이상 급상승하는 '열 폭주' 현상이 나타납니다. 또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는 보호 팩으로 싸여 있어서 화재 진압까지 길게는 8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에는 지난 8월 초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해서 입주자들에게 큰 피해를 일으켜, 전기차를 두려워하는 ‘전기차 포비아’ 현상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함승헌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이 사고를 새로운 환경보건 문제를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와 관련 전기차 화재의 직‧간접적인 주요 피해 중 하나가 건강 문제입니다. 8월의 전기차 화재 사고를 겪은 주민들은 피부 질환과 안과 질환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과거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산불에 의한 대기오염이 피부 질환과 관련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전기차도 배터리도 불에 타면서 산불과 비슷한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함승헌 교수는 “배터리 연소 시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유독가스는 건강에 직‧간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구성 요소인 니켈(Ni)과 코발트(Co)가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국제접촉피부염연구회(ICDRG)의 분류에 따르면 이 물질들은 주요 알레르겐으로 작용합니다. 또 배터리 화재 시 발생하는 불화수소(HF)는 강한 부식성과 독성을 지닌 가스여서 피부와 눈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고, 호흡기 질환도 유발합니다.
▶체계적인 5가지 환경보건 대책 필요
그럼 혹시 모를 전기차 화재 사고 시 어떻게 대응해야 건강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까요? 함승헌 교수는 사고 발생했을 때 필요한 5가지의 체계적인 대응법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산업환경보건전문가를 통한 신속하고 정확한 작업환경과 대기환경 모니터링입니다.
둘째, 화재 발생 공간의 실내공기질인 △미세먼지 △중금속 △불화수소 농도를 측정해서 그 결과를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셋째,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의료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서 △피부과 △안과 △호흡기내과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이 협진을 통해, 종합적인 진단과 치료를 진행해야 합니다.
넷째, 추가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건강 영향 평가를 실시하고, 마지막으로 노출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코호트 연구를 통해서 화재 노출이 건강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 파악이 필요합니다.
함승헌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의 안전성 기준 강화, 화재 시 대응 매뉴얼 개선, 소방관에 대한 교육, 환경보험 제도 도입 등 법적‧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고 피해 책임에 대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효과적인 리스크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한데 주민들에게 현 상황과 잠재적 위험 그리고 대처법에 대해 정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술 발달의 결과물인 전기차는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중요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전기차 화재 사고들이 보여주듯이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예기치 못한 건강 위협이 상존하는 게 현실입니다.
때문에 기술 발전의 이면에 숨은 환경보건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고, 대비하기 위해 △정부 △환경보건 전문가 △시민사회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입니다.
함승헌 교수는 “우리 사회가 환경, 건강, 기술발전의 균형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안전하고 건강한 미래를 위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환경보건 정책 수립과 시스템 구축,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