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난치성 유전 질환인 골수부전증후군 환자를 분석한 국내 최대 규모의 연구를 통해 10여 년간 진단명을 몰랐던 질환의 정체가 밝혀졌다.
2010년 10대 자매가 백혈구 감소로 병원을 찾았고, 모든 검사 기법으로도 정확한 질환명을 밝힐 수 없었는데 최근 선천성 유전 질환인 ‘AMED 증후군’으로 진단 받았다.
다양한 유전 분석 기법으로 우리나라 골수부전증후군 환자의 게놈(유전자‧염색체) 지형을 규명하고, 진단의 효율성을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명신·이종미 교수, 혈액병원 소아혈액종양센터 정낙균 교수팀은 2010년부터 2024년까지 서울성모병원에서 골수부전증후군이 의심돼 진료 받은 환자 130명을 대상으로 유전 분석을 진행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영국혈액학회지(British Journal of Haematology)’ 최근호에 실렸다.
연구에는 △패널 시퀀싱 △임상엑솜 시퀀싱 △마이크로어레이 △전장유전체 시퀀싱을 포괄적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50%의 환자에서 유전학적 선천성 질환 확진이 가능했다. 특히 골수부전증후군 중 하나인 AMED 증후군을 국내 처음으로 진단했다.
아울러 △선천성 혈소판 감소증 △골수성 종양 △선천성 면역장애 같은 골수부전증후군과 비슷한 임상 증상을 보였지만 병리 기전이 완전히 다른 질환들을 효과적으로 감별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에선 임상엑솜 시퀀싱으로 검출이 어려운 변이는 전장유전체 분석이 필요하다는 결과도 얻었다.
전장유전체 시퀀싱을 통한 추가 진단으로 최근 국가 주도로 이뤄진 국가바이오빅데이터시범사업의 유용성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팀의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기존 검사법으로는 판단이 힘들었던 유전 질환을 보다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낙균 교수는 “과거에는 현미경으로 관찰한 골수 내 세포 모양과 골수 조직 검사 결과로 혈액 질환을 진단했다”며 “하지만 유전자 분석 기법이 발달해서 유전자적 특성을 기준으로 질환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적절한 추적 관찰과 맞춤 치료를 시기 적절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유전자 분석을 통한 희귀‧난치 질환 조기 진단으로, 감별이 어려운 혈액 질환이 중증질환으로 진행하는 비율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전 질환 의심 환자 정확한 진단에 도움
골수부전증후군은 골수의 부적절한 조혈에 따른 혈구 감소를 보이는 희귀난치성 유전 질환군으로, 발생 빈도는 신생아 백만 명당 65명 정도로 낮다.
하지만 증상이 매우 다양해서 정확하게 진단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제 유병율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한다.
골수부전증후군 중 일부 질환은 급성 백혈병 또는 특정 고형종양으로 진행할 위험이 있어서 면밀한 추적 관찰과 적정한 맞춤 치료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 최근 골수부전증후군에 영향을 주는 많은 유전자들을 조합한 표적화된 패널을 사용한 차세대 시퀀싱 기법의 발달로, 효율적인 진단이 가능해지고 있다.
골수부전증후군을 포함해 세계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희귀 질환은 7000여 종인데, 임상 증상 특징이 없어서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희귀 질환의 약 80%는 유전 질환으로, 생명을 위협하거나 만성적인 쇠약을 유발하는 중증질환이 많다. 국내 등록된 희귀‧난치 질환은 1094종이고, 환자 수는 100만 명이 넘는다.
유전진단검사센터장 김명신 교수는 “임상 증상으로 유전 질환이 의심돼도 진단 검사가 음성으로 나온 환자들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다시 분석한 결과, 14년 만에 환자에게 정확한 질환명을 알릴 수 있게 됐다”며 “골수부전증후군 뿐만 아니라 그동안 진단하지 못했던 다양한 새로운 유전 질환을 찾았고, 앞으로도 환자 개인을 위한 최적의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진단법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미 교수는 “서울성모병원 유전진단검사센터는 6800여 개의 유전자를 한 번에 분석할 수 있는 임상엑솜 시퀀싱을 활용해서 선천성 유전 질환을 진단하고 있다”며 “이번 연구 결과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골수부전증후군 환자를 분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