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靑出於藍). 2023년 현재 한국의 노인복지 정책과 관련 비즈니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문구다.
일찌감치 초고령 국가에 들어선 일본은 세계 각국에서 고령정책 및 산업을 벤치마킹하는 대표적인 나라였다. 우리나라도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하기 전 일본을 찾아 관련 정책과 시스템을 견학했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 만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한국의 노인복지정책과 고령자 비즈니스가 눈에 띄게 발전하면서 오히려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일본 실버케어 전문가들은 한국의 노인복지정책과 고령자산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때마침 고령자 요양사업 전문가들과 실버 비즈니스 전문가 35명이 한국을 찾았다.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 현황을 파악하고, 실버산업의 현장을 둘러보기 위한 행사였다.
참가자들은 우리나라 노인복지정책 세미나에 참관하는 한편, 노인요양 및 실버산업 현장을 둘러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실제 시찰이 끝난 뒤 만족도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33명의 응답자 중 3명만 ’보통‘이고, 나머지는 ’매우 만족‘ 또는 ’만족‘으로 답했다.
한국시니어라이프협회 고종관 회장이 일본고령자주택신문 아미야 토시카즈 대표와 시찰단장인 마야자키 마야 전 중의원에게 한국의 노인복지정책과 실버산업의 현주소를 물었다.
야마자키 전 중의원은 개호보험 등 일본의 고령자 복지정책의 초석을 마련한 인물이다. 이번 방문 행사는 한국시니어라이프협회가 기획 및 진행을 맡았다.
“한국의 앞선 디지털화 및 주민 참여 프로그램 인상적”
▶고종관 회장(이하 고) : 우선 한국의 실버 비즈니스와 요양 서비스 전반에 대해 살펴봤는데, 이에 대한 총평을 부탁한다.
▷아미야 토시카즈 대표(이하 아미야 대표) :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다. 이번에 현장에서 직접 보니 일본의 시스템을 한국의 현실에 맞게 잘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서 많이 놀랐다. 특히 실버케어 서비스 수준이 굉장히 높고 우수하다는 걸 체감했다. 치매 예방‧관리에 대한 운영도 아주 잘 되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야마자키 마야 전 중의원(이하 야마자키 중의원) : 일본에서 처음 개호보험(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만들 때 심리원으로 있었다. 1995년 시의원 시절 개호보험 준비에 참여하고, 2000년부터 시작했으니 23년 됐다. 한국이 일본을 벤치마킹해서 일본에서 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현실에 맞게 체계화했다.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한국 실정에 맞게 뿌리를 내린 것이 주목을 끈다.
▶고 :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와 관련해 한국이 일본과 다른 점, 그리고 특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미야 대표 : 한국은 일본보다 노인 관련 예방 활동, 치매 등에 대한 디지털화가 훨씬 앞서 있다. 일본도 정보통신기술(ICT)에 대한 니즈가 있어서 추진하려고 하지만, 진행이 잘 안 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한국이 많이 앞서 있고, 일본도 더 늦기 전에 빨리 디지털화를 이뤄야 한다는 걸 느꼈다.
▷야미자키 중의원 : 강서구치매안심센터를 방문했을 때 교육 및 운영시스템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치매센터 방문이 힘든 상황에서도 ‘줌’ 같은 디지털 사용법을 노인들에게 가르쳐서 치매관리 교육을 진행했다는 설명을 듣고, 일본보다 훨씬 많이 앞서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고 : 디지털 기술적인 측면 이외에 제도적‧정책적인 면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야미야 대표 : 한국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통합해서 보건소를 운영, 실무적인 모든 정책을 중점 관리해 특화시킨 것 같다. 이와 관련 일본은 지자체나 국에서 관련 정책을 각각 운영한다.
▷야미자키 의원 : 치매센터‧보건소 등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스템이 인상적이었다.
▷야미야 대표 : 맞다. 일본도 한국처럼 지역사회에서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참여형 프로그램에 대한 니즈가 굉장히 높지만 아직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시스템을 잘 벤치마킹해서 한국 현실에 맞게 적절히 녹여내서 앞서가고 있는 것은 부러운 부분이다.
“일본, 노인 주거 시설 개보수 개인 부담 1%”
▶고 : 얘기한 것처럼 한국은 요양서비스 측면은 잘 이뤄지고 있지만 개호 로봇 등 기술적‧산업적인 측면은 일본이 많이 발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2023 홈케어‧재활‧복지전시회’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나.
▷야미야 대표 : 일본이 다양한 노인생활과 케어를 돕는 개호 로봇 등의 적용이 빠르긴 했지만 아직 활성화되진 않았다. 현재 개호 로봇 중 노인 이동수단 로봇 등이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거동이 힘든 노인을 이동시킬 때 요양사들이 로봇을 신체에 착용하면 허리‧관절 부담을 줄이는 것들이 적용되고 있다.
▶고 : 독거노인들과 대화가 가능하고 노래도 해주는 등 친구‧가족 같은 휴먼 로봇도 있지 않나?
▷야미자키 의원 : 혼자 생활하는 치매 환자들을 위해 대화를 걸고, 카메라도 달려서 노인들의 안전사고 등을 모니터링 할 수 있는 로봇의 활용이 점차 늘고 있긴 하다.
▶고 : 고령사회의 어두운 면 중 하나가 독거노인과 이에 따른 고독사다. 한국도 독거노인이 점차 늘고 있고,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야미자키 의원 : 일본도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고독사 등 독거노인에게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화기 위해 한 일본 기업은 실내‧냉장고 등에 CCTV 등 모니터를 설치해서 음식 섭취, 화장실 사용 여부 등 일상생활을 관찰하는 기술들을 개발해서 내놓기 시작했다.
▶고 : 그럼 이 같은 서비스는 정부 지원으로 진행하나, 아니면 개인이 부담하나.
▷야미자키 의원 : 노인 모니터링 서비스가 아직 활성화된 게 아니어서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지원해 주는 곳도 있고,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지역도 있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시설‧장비 설치 지원은 국가에서 많이 지원하고 있다.
▶고 : 노인의 실내 낙상 방지를 위해 각 가정의 시설을 개보수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한국은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이 같은 시설 지원은 안 되고 있다.
▷야미야 대표 : 일본은 재택 시설 개보수에 대한 정부 지원율이 높다. 시설 개보수에 발생하는 총비용의 1%만 개인이 부담하면 된다. 소득이 많은 사람도 2% 부담에 그친다. 소득에 따른 본인부담금에 큰 차이를 두지 않았다.
▶고 : 한국은 휠체어‧침대 등 보호장구 지원에 그치고 있다. 일본은 예방차원의 시설 지원 이 잘 돼 있는 것 같다.
▷ 야미자키 의원 : 시설 개보수 본인부담금 1% 이외 비용은 정부와 지자체가 각각 50%씩 부담한다. 때문에 노인들이 집에서 생활하다 넘어질 수 있는 화장실‧침대 같은 곳에 손잡이 등 다양한 예방 시설을 설치해서 낙상을 줄일 수 있다.
대형화‧고급화한 한국 실버타운 인상적
▶고 : 가톨릭 관동대국제성모병원과 연계된 실버타운 ‘마리스텔라’를 방문했다. 한국에서는 이 같은 대형화된 대규모 시니어 타운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일본은 어떤가?
▷야미야 대표 : 이 부분은 한국과 일본이 매우 다르다. 한국의 실버타운은 대형화‧고급화가 특징이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인 것 같다. 반면 서민들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물론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역적으로 작은 소규모 시설을 늘려 서민들의 접근성을 높여야 할 것 같다. 민간차원의 작은 시설에도 정부의 정책 지원을 늘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야미자키 중의원 : 일본은 처음부터 개호보험으로 노인 대부분이 요양시설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때문에 큰 규모의 시설보다 지역사회에 알맞은 작은 시설들이 많이 존재한다. 한국은 민간투자 성격의 대규모 시니어타운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고 : 공감한다. 개인의 자산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노인이 공평하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민간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이 고령화와 관련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어떤 게 있다고 생각하나.
▷야미야 대표: 한국과 일본은 이웃 국가지만 그동안 정보 및 산업교류가 잘 안 됐다. 이번 세미나와 한국 방문을 계기로 민간 차원에서 활발한 교류를 시작하면 정부 차원의 움직임도 있을 것이고, 결국 양국 시니어 정책 및 관련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야미자키 중의원 : 한국과 일본은 풍습, 생활습관이 굉장히 비슷하다. 가까운 이웃으로서 정보 교류를 이어 나가서 부족한 시니어 관련 인재 육성, 비즈니스 발굴 등을 위해 상호 협력해야 한다.
▶고 : 우선 양국이 민간 차원에서 한‧일 실버 비즈니스 협력단 같은 것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면 긍정적인 결과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