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에게 스마트 홈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주택 개조와 스마트 홈은 노인의 안전사고를 방지하는 씨줄과 날줄이다. 시설을 아무리 완벽하게 갖췄다고 해도 노인의 실내 사고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노인을 위한 스마트 홈은 하드웨어로는 할 수 없는 인적 서비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IT기술이 마치 사람이 옆에서 노인을 도와주는 것처럼 사고를 차단하고, 건강관리를 지원해 주는 개념이다. 결국 기술을 통한 ‘Aging in place'를 실현한다.
고령사회에 접어든 나라들이 가장 당면한 문제가 간병인이다. 미국 은퇴자협회(AARP)에 따르면 2020년 자국 내 간병인 수요는 5000만 명에 이른다. 문제는 대부분의 노인 가정이 간병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HUD(미국주택도시개발부)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돌봄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선 가정에서 월 900~500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노인 가정의 90% 정도가 경제적인 사정으로 이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여기에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노인을 위한 스마트 홈 시스템이다. 미국이나 북유럽 등 하이테크 기술에 앞선 나라들이 고령자를 타깃으로 하는 스마트 홈 개발을 서두르는 이유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의학부가 만든 스마트연구단(SeniorSmartⓇ Center)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이 진행하는 스마트 홈의 개념도 ‘Aging in place'와 크게 다르지 않다. 노인이 오랫동안 안전하게 자신의 집에 머물 수 있도록 기술과 지역기반 서비스를 지원한다.
연구단은 2007년 고등교육위원회로부터 우수연구 및 경제센터로 승인을 받아 4단계에 걸쳐 연구를 진행해 왔다. (문창호 저 ’미국에서 노인을 위한 스마트 홈 개념의 요소와 적용‘논문에서)
연구 목표는 노인의 신체기능을 유지·증진시켜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보행 및 균형 장애가 있는 노인의 재활을 위한 비디오게임, 전자 장비를 활용한 낙상예측 및 경고시스템, 노인의 혈압·체중·투약 등의 자료를 수집해 전송하는 가정 모니터링 시스템 개발 등이다. 이 같은 연구는 4차년 연구가 끝난 2010년에 이미 개발돼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실제 노인이 거주하면서 맞춤식 수요를 개발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1998년 죠지아 기술연구소(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가 시도한 AHRI(Aware Home Research Initiative)가 그곳이다.
연구소가 만든 ‘Aware Home(깨어있는 집)’은 실제 사람이 살 수 있는 3층(5040 스퀘어피트)짜리 집이다. 바닥에는 무게감지 센서를, 벽에는 웹카메라를 달아 노인의 행동을 추적한다. 또 소파에는 심장박동 측정센서를 장착해 이상신호가 감지되면 이를 보호자에게 실시간으로 원격 전송한다. 노인과 원거리에 사는 가족은 디지털 액자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비상연락 사항 뿐 아니라 서로의 일상을 생중계해 정서적인 교감도 지원한다.
AHRI는 조지아공대(GTRI)와 협력해 50세 이상의 고령자 550명을 대상으로 1~6개월 실버제품을 사용해보고 평가하는 HomeLab도 구축했다. 미국에서도 처음으로 시도됐던 이 같은 주거실험은 당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비영리기관인 MHC(Masonic Homes of California)가 CDW Healthcare와 공동으로 시작한 스마트 파일럿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취약계층을 위해 지역 공동체를 운영하는 MHC는 노인의 독립적인 생활과 치매, 호스피스까지 다양한 고령자를 케어한다.
CDW와 함께 제공하는 기술은 다양하다. 원격으로 제어하는 온·습도, 시각 초인종, 침대센서, 디지털 약상자 등이다. 시각초인종은 청각장애자를 위해 초인종이 울리면 표시등이 깜박이도록 설계했다. 집을 비운 사이 방문객이 찾아오면 휴대폰으로 연결돼 비디오 대화를 할 수 있다.
매트에 내장된 센서는 호흡수, 심박수, 수면시간, 수면 중 움직임, 거주자의 침대를 떠난 회수를 모니터링 한다. 약을 복용하는 노인은 디지털 약상자를 이용할 수 있다. 복용시간 알림기능과 소진된 약은 미리 점검해 주문하도록 도와준다. 복용량을 변경하거나 중단할 수 있다.
미국 미니에폴리스에 기반을 둔 Reemo사는 ‘제스처 컨트롤러’ 플랫폼을 개발해 2012년 설립됐다. 손목에 팔찌나 시계(콘트롤러: 사진)를 차고 손동작으로 집안에 있는 가전제품을 작동한다. (사진) 시계형 콘트롤러는 생체측정을 통해 건강정보를 원격으로 전송해 주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웨어러블 기술을 활용, 환자의 행동패턴을 축적한 데이터를 분석해 건강관리에 활용하는 것이다. 낙상은 물론 요로감염, 파킨슨 병, 심혈관질환, 류마티스 관절염, 우울증 등을 사전 예측해 의료기관에 건강 상태를 보고한다.
정부차원의 지원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15년 미국 연방보건자원국(Health Resources and Services Administration)은 알링턴대학 이공계 대학교수들에게 600만 달러의 연구기금을 지원했다. 이른바 스마트 홈 프로젝트. 연구공간은 첨단시설을 갖춘 주방, 특수 화장실, 자동화 침대 등 스마트 케어 홈으로 꾸며졌다. 이를 통해 연구원들은 흥미로운 기술을 적용했다.
보행과 체중을 측정·평가하는 센서를 바닥에 깔고, 거울에는 특수 카메라를 내장해 노인의 표정과 피부색을 진단한다. 피부색의 변화는 혈액의 산소 함유량 등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보여준다.
이밖에도 약물치료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수면은 잘 취하는 지, 침대에 너무 오래 머물지는 아닌지 등을 감지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흥미로운 것은 각 가정에서 생성된 막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노인의 응급상황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 노인의 행동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경고신호를 보낸다.
IT시장조사업체인 Strategy Analytics에 따르면 2015년 가정 내에서 노인모니터링 기술을 이용한 곳은 미국 7만5000가구, 서유럽 3만 가구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2020년 미국에서만 60만 곳, 서유럽에서는 57만9000곳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가 급증하면서 기술 수요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찍 고령사회에 진입한 북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스웨덴이나 네델란드 역시 동작과 인지능력이 둔화된 노인을 위해 스마트 홈 개발이 한창이다.
스웨덴은 2000년 건설회사 JM이 홈오토메이션과 인텔리전트 빌딩시스템을 결합해 스마트 홈을 선보였고, 덴마크는 스마트 홈 재단을 설립, 1994년에 첫 실험주택을 제시했다. 2001년엔 실용화가 가능한 모델도 나왔다.
미국 은퇴자협회는 집 안에 거주하는 노인이 돌봄시설로 거처를 옮긴 사람보다 더 건강하고, 이는 특히 인지능력과 우울증에서 큰 차이가 컸다고 강조한다.
2015년 고령사회로 접어든 미국은 현재 메디케어 지출액이 국민총생산의 3%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수발을 받아야 하는 노인의 연령이 늘어나면서 메디케어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뒤인 2026년에는 의료와 퇴직 프로그램 운영으로 1.2조 달러의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노인 건강을 관리해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것은 이제 국가에겐 발등의 불이됐다. 우리에게도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저렴한 비용의 노인 스마트 홈 개발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다.